시설평가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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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07회 작성일 2025.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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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시험은 언제나 스트레스였고, 넘기 힘든 산이었고, 두렵고 떨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시험이라는 것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굴까를 생각하며 그를 원망했고, 머리가 좀 크고 난 후에는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를 비판했으며, 이런 공부가 살아가는데 과연 무슨 도움일 될까를 의심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냥 공부가 싫고 시험이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의 시험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매 과목마다 도화지 크기의 답안지 3~4장에 깨알 같은 글씨를 빼곡히 채우는 일이 예사였습니다. 공부가 부족해서 답을 적지 못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과 팔뚝이 떨어져나갈 듯이 아파서 더 이상 답을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혹독했습니다. 외울 수 있는 용량을 초과했다며 머리에서 삐~삐~ 경보음이 울렸고, 공부할 분량은 까마득히 남았는데 시간은 부족한 상황은 극도의 불안감과 정신이상 증세를 유발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청춘을 바쳤던 신학교 생활을 마칠 무렵,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이제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시험은 없겠구나…’ 그러나 이게 얼마나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같은 생각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납니다. 삼수 끝에 합격했던 2종보통 운전면허 시험과 용케도 한 번에 붙었던 1종대형 면허 시험, 사회복지 대학원에서의 수차례 시험, 소방안전 관리자 시험, 사회복지사 1급 시험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와 깊이는 다르지만 시험에 임할 때 마다 받게 되는 긴장감과 불안감은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몸살과도 같았습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시설 평가를 준비하면서 그 시절의 그 긴장감이 새삼 살아나는 기분입니다. 저도 이러한데, 하물며 몇 달에 걸쳐 준비해 오신 우리 선생님들은 얼마나 몸과 맘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을지, 저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을 3년마다 반복해야 한다니…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혹시라도 퇴사를 고민하는 분 계실까봐 걱정일 지경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시험이 없었다면, 학창시절에 나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을까? 그때의 그 긴장감과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없었어도, 그토록 지식에 대한 몰입으로 청춘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생선을 나르는 횟집 차량에 천적인 생선을 한 마리 넣어두면 긴 이동 시간에도 생선들이 활기를 잃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적당한 긴장과 고생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조이빌리지를 한층 더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우리 선생님들! 그렇다고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마시고, 대신 절대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그렉 매덕스라는 투수가 있었습니다.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4번이나 수상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입니다. 그런데 이 투수의 전성기 시절에도 직구의 구속이 140키로대 초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시설평가의 지표가 조이빌리지를 대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선생님들의 헌신과 이용인들의 행복이 평가지표에 다 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이빌리지의 첫번째 시설평가를 위해 지금껏 열정적으로 준비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치열했던 준비과정을 이토록 착실하게 치러냈으니, 이미 좋은 결과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종민(F.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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