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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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64회 작성일 2025.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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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마다 혼자서 산에 다니는 습관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산에도 가보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항상 다니는 가까운 몇몇 코스를 정해놓고 휴일을 보냅니다.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불암산, 수락산… 가까운 거리에도 좋은 산이 넘쳐나서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저의 휴일은 늘 행복합니다.
산에 오르다 보면 새소리를 듣게 됩니다. 들머리에서부터 새소리가 귓가에 쏟아집니다. 소프라노 가수의 노래 소리 같기도 하고, 플룻이나 피콜로의 연주 소리 같기도 합니다. 짐승들의 소리를 울음소리라고 표현하는 것에 비해 새들의 소리는 흔히 노래 소리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산에 오르다 보면 정상이 가까워집니다. 그런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새소리도 달라집니다. 정상 근처엔 까마귀들이 유독 많습니다. 그런데 까마귀 소리는 다른 새들의 소리와는 정말 많이 다릅니다. 노래 소리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할 뿐만 아니라 듣기에 따라서는 불길하고 무섭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까마귀를 凶鳥로 여기는 정서도 아마 그 독특한 소리 때문인 듯 합니다.
그러나 까마귀 입장에서는 참 억울한 일입니다. 그저 자기 성대에서 나는 소리를 내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내는 소리가 아니라, 그저 자기 동족들과 소통하기 위한 소리가 다른 새들에 비해 특이할 뿐입니다. 사실은 소프라노 가수와 같은 소리를 내는 새들도 일부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게 아닙니다. 그들 역시도 생존에 필요한 의사소통을 하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 소리를 좋게 들을 뿐입니다. 그런 즉, 새소리는 다 똑같은 새소리일 뿐이라는 거죠.
우리 조이빌리지의 식구들 중에는 독특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처음 듣는 사람은 깜짝 놀랄 수도 있는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왜 저렇게 특이한 소리를 계속해서 내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수다스러운 사람이 왜 저렇게 말이 많은지를 궁금해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분들도 그저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 뿐이고, 최선을 다해 주변 환경과 교류하고 있을 뿐이겠죠. 물론, 무슨 뜻인지는 아쉽게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수다를 떠는 소리일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느님을 찬미하며 열심히 기도하는 소리일 수도 있을 겁니다.
루카복음 19장에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하느님을 찬미하는 군중들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군중이 소리지르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결코 막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돌들마저도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꾀꼬리가 내는 소리와 까마귀가 내는 소리가 사실은 별로 다르지 않은 새소리이듯이, 우리 조이빌리지의 주민들이 내는 소리도 전혀 이상한 소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노래도 하고 수다도 떨고 기도도 올리면서,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종민(F.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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