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에 취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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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6회 작성일 2024.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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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전 대건카리타스 법인에서 일하던 무렵 조이빌리지의 설치 신고를 추진했던 일은, 아무리 돌이켜봐도 ‘얼떨결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설명이 길어지겠지만, 그 무렵 법인에는 조이빌리지 외에 아주 심각한 이슈가 있었고 그 이슈에 대응하느라 온 정신이 거기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때도 이미 ‘탈시설’은 장애인복지계의 중대한 화두였지만, 그 중대한 화두마저 대건카리타스의 운명이 달려 있던 심각한 이슈에 묻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법인의 이슈에 함몰되어 있던 저는, ‘탈시설’의 강압적인 물살 가운데서도 신고만 되면 조이빌리지는 그 물살을 헤치고 어떻게든 자생하려니 막연하게 생각하고 말았었던 것 같습니다.
설령 자생하지 못해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지독한 이기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면 그 무렵은 법인에서의 제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조이빌리지 신관 건축을 시작해야 하는 땅에는 농작물들이 심겨져 있었고, 그것을 심은 사람들은 추수때까지 건축을 미루라는 몽니를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엄연히 우리 땅인데 말이죠. 법인을 뒤덮고 있던 이슈도 해결이 요원했고, 조이빌리지의 건축도 시작을 못했던, 그 어정쩡한 시점에서 저는 본당으로 인사발령을 받아 이 바닥을 떠나게 됐습니다.
저만 그런지 아니면 저 말고 다른 신부님들도 대체로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새로운 임지로 그렇게 떠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떠나간 후에는 나보다 훌륭한 후임자가 올테고, 새로운 곳에는 새로운 소임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이죠. 게다가 새로 맡겨진 소임지도 만만찮은 상황였습니다. 부임과 동시에 터진 그 심각했던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암흑같은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물론 조이빌리지도 코로나를 피할 방도가 없었겠죠. 조이빌리지야말로 그 무렵 암흑을 넘어 연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만, 원래 남의 암보다 나의 감기가 훨씬 중하기 마련입니다. 조이빌리지를 기억하고 염려하기엔 제가 집중해야 할 일들이 따로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심한 시간이 흐르고 코로나가 한풀 꺾일 무렵, 원장님의 안부 메시지를 받고서야 조이빌리지에 대한 일말의 부채의식 같은 감정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과일을 싸들고 조이빌리지를 방문했을 때, 그사이 탈시설의 강압이 어떻게 거세지고 있는지도 체감이 되었습니다. 법인 임기말에 조이빌리지를 준비하고 신고하면서 마음 한켠에 일던 불안감, 보조금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그 불안감이 기우만은 아니었던 겁니다.
애초에 그런 불안감이 없었다면 마음이 덜 불편했을 겁니다. 진작에 탈시설의 기조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불안감도 근거없는 불안감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보조금이 안 나올 것이라는 것이 더 합리적인 예측이었고, 그렇다면 조이빌리지 설치를 애당초 막아서는 것이 법인의 책임자로서는 상식적인 결정이었을 겁니다. 마치 상자속 폭탄이 얼마 후 터질 것을 알면서 태연히 상자를 후임자에게 넘기고서 모른척 자리를 뜬 것 같은, 그런 찜찜함과 미안함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다’는 말은 역설적이면서도 절망적입니다. 기도의 힘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면서도 맨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급류에 휩쓸려 물속에 빠져드는 사람이,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잡게되는 지푸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죠. 지푸라기인줄 알았는데 뜻밖에 동아줄일 수도 있다는 기대가 우리를 기도하게 만들고, 인간은 그렇게 하느님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무렵 제가 원장님께 드렸던 말씀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조이빌리지에 보조금만 나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고. 과장이 섞인 말일지 몰라도, 빈말은 아니었습니다.
2022년 12월! 조이빌리지에 보조금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대건카리타스 법인 회장의 임기가 그제서야 끝난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은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회복지시설에 보조금이 나오는 것에 감정 주체 못하며 너무 기뻐하면 그게 이상해 보일까봐, 저 나름대로 최대한 태연한 척 연기를 했습니다. 그때 간절했던 그 기도의 힘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
그 후 어쩌다 보니, 제가 조이빌리지에 오게 됐습니다. 잘 지어진 새 건물에, 순수한 영혼의 장애인들과, 30명이 훌쩍 넘는 유능한 직원들과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감탄스런 자연 환경… 이제 이곳에서 장애인분들과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왔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가 저절로 터져나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참 미안했습니다. 조이빌리지가 가장 힘들 땐 이 공동체를 잊고 살다시피 했는데, 이제 모든 것이 갖춰진 시점에 슬그머니 빈손으로 와서는 숟가락을 얹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탈시설 이슈와 관련된 집회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벅찬 마음으로 부임한 저의 새 임지가, 어떤 사람들에겐 적개심과 공격의 대상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런 사람들이 다수였고, 내가 오히려 비주류의 소수에 속해있다는 것이 원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줄곧 지지해왔던 정치 세력이 우리같은 시설을 공격하는 상대진영이라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도 이 싸움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현실이 지금도 고민스럽습니다.
고민은 내부에도 있었습니다. 한 장애인은 며칠 사이에 연거푸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쓰러질 때마다 머리가 찢어졌습니다. 매일 심한 자해로 스스로 몸을 상하시는 분도 계시고, 이용인의 타해를 견디지 못해 그만 두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조기 노화로 인해 건강이 염려스러운 이용인들도 계시고, 노인요양원 시절부터 사용됐던 건물은 벽 곳곳에 쩍쩍 금이 가 위태로워 보입니다.
이분들께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 조이빌리지이기도 하지만, 또한 이렇게 막막한 일들이 산적한 곳이 조이빌리지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내려앉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또한 제가 해야 할 기도가 그렇게나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죠.
조이빌리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곳을 보금자리 삼아 살고 있는 우리 장애인들. 이분들을 한 마음으로 돌보는 직원선생님들. 또 사랑하는 자녀를 애절한 마음으로 이곳에 맡기신 부모님들… 그분들의 삶이 평화와 행복과 보람으로 넘쳐 나길,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언제까지 조이빌리지에 있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래도록 있겠다는 약속도 못 드립니다. 그건 제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물론이거니와 이곳을 떠난 후에도 계속 기도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시간 생애 전체를 바쳐 기쁨터 공동체를 이끌고 조이빌리지를 일구신 김미경 원장님께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분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도 큰 작품이 될만큼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원장님이 만들어오신 삶의 스토리가 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리라 믿습니다. 그 스토리에 미약한 저도 감초같은 단역으로 남을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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