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반대 시위 발언 요약 (6월 11일, 6월 18일) - 김종민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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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7회 작성일 2024.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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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1일, 6월 18일 수원 경기도청 앞에서 있었던 탈시설지원 조례 폐지를 위한 시위에서 조이빌리지에서 근무하시는 김종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께서 발언하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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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시설 부모님들이 모이는 집회에 참석해 보면 다들 연로하시고 건강도 안 좋아 보이셔서 늘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집회에 참석하시는 거주시설 부모님들은 이렇게 연로하시고 건강이 안 좋으실까?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 자녀들이 나이가 많다는 뜻이겠죠.
발달장애인들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수록 거주시설이 더욱더 절실해지게 됩니다. 학교 다닐 나이엔 특수학교든 어디든 다니고 있으니까 거주시설이 얼마나 절실한지 실감이 안 날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도 아직은 젊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음을 알았을 때, 거주시설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게 되고, 그나마 자녀를 시설에 입소시킨 부모님들은 한 시름 놓은 입장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우리 부모님들은 점차 노년기를 향해가는 연세가 되어 가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거주 시설 부모님들은 연세가 많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건강들도 이미 안 좋으시고, 그래서 집회도 쉽지 않음을 알고나니 마음이 더 아파옵니다.
비장애인들에게 있어서 학교에 다니는 그 10년 여의 시간은 말 그대로 ‘자립’을 위한 과정입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그야말로 세상 속에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발달장애인들은, 학교를 10년씩 다닌다고해서 그러한 능력이 장착되지 않습니다. 탈시설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립’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말이 좋아 자립이지 장애인들에게 자립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비장애인들도 청년이 되었을 무렵에 야심차게 부모님 곁을 떠나겠다면서 독립을 선언합니다. 그렇게 독립해서 잘 지내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맨날 라면만 먹고, 술에 쩔어 살면서 청소도 안 해서 열악하게 지내다가, 결국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비장애인들의 독립도 이렇게 성공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엄연히 있는데, 발달장애인들이야 어떠할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발달 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지하고 지원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과 장치들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정책과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립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케이스가 없을 거라 단언할 수는 없겠죠. 그럴 때, 그렇게 자립에 실패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안전장치로 생활시설을 남겨둬야 하는 건 당연한 대비책입니다.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서 거주시설을 ‘우선’ 폐쇄해야 한다는 것은 황당한 논리적 비약입니다.
자립에 실패했을 땐 집으로 돌아가 시설 대신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아야할텐데, 우리 부모님들이 언제까지 그렇게 팔팔하게 자녀들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본인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노년이 도래하고 있고, 또 이미 도래한 분들이 태반인데 말이죠. 이 절박한 집회에도 나이가 많고 건강이 나빠져서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노년의 부모님들께 절망적인 양육부담이 부과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만약에… 줄기차게 탈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뜻대로 정말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정말로 모든 생활시설이 폐쇄되고, 시설에 있던 장애인분들이 집으로 돌아가든 혹은 지원주택과 같은 정책적인 주거전환을 통해 서비스를 받게 되면, 발달장애인들은 자립해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케이스도 있긴 있을 겁니다. 그러나 탈시설 이후 자립 생활에서도 당연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테고, 위험하고 고통스런 부작용들이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런저런 불만도 터져나올테고 다양한 사건 사고도 빈발하겠죠. 그럼 또 거기에 대한 보완책과 수습책을 만들어 내야 할 겁니다.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질테고, 새로운 법안들이 발의되겠죠. 그래서 계속 그런 부분들을 보완하고 수정하고 보완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어떻게 될까?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결국 지금과 같은 전문적인 거주시설의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되지 않을까요? 지금 탈시설 주장하는 분들이 언제까지고 지금과 같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지는 않을텐데, 그때가면 또 새로운 시설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부응하기 위해 세금 쏟아 붓고, 없던 시설 새로 만들려고 하니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면 또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어야 할테고, 그 와중에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집회 열고 시위할테고… 발달장애인 복지의 역사는 그렇게 반복될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제일 심각한 문제는, 그 반복되는 역사 속 아귀다툼에 희생되는 피해자가 생긴다는 겁니다. 본인 의사표현도 못하는 사회적 최약자인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희생양이 될 거라는 게 제일 심각한 문제인데, 탈시설이라는 이념 구현을 위해서 시설 폐쇄를 추진하는 분들은 그 사실을 심각하게 고민해봤을까요? 그런 고민도 없이, 장애인 인권이니 자기결정권이니 하는 것들을 운운할 수는 없습니다. 시대의 무의미한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겁니다.
장애인복지 정책에도 헤리티지라는 게 있어야 합니다. 지금 현존하는 발달장애인 거주 시설이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시행착오와 고통스런 역사도 있었겠지만, 그러한 가운데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온 사실도 부정되어선 안 됩니다. 탈시설 조례안은 이 귀한 헤리티지를 통째로 폐기하려는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탈시설도 좋고 지원주택도 좋습니다. 그러나 생활시설을 폐쇄하겠다는 목표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또 무책임한 주장인지 아셔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이번 <탈시설 지원 조례안>이 통과되면 조례안을 발의하신 의원께서는 본인의 업적이 하나 생겼다고 뿌듯해하실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불행해질 사람들과 고통받게 될 현실이 얼마나 참혹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이번 조례안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하고, 또 폐기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명분과 다른 핑계로 우리 시설들을 폐쇄시키려는 시도가 계속 되리라 예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부모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건강하십시오. 여러분들이 건강하셔야 이런 집회도 지속될 수 있고, 그래야 귀한 자녀분들의 삶의 터전도 지킬 수 있는 겁니다. 힘든 여정 씩씩하게 걸어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저는 그저 미약한 한 사람의 천주교 신부지만, 이 미약한 힘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걷겠습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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